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스부르고 왕조 (문단 편집) === 왕가의 근친혼 === 합스부르크 왕가는 주걱턱이 특징이었는데, 특히 근친혼이 성행했던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가는 상대적으로 근친혼이 덜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비해 주걱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도 근친혼이 심했지만 압스부르고 왕가의 멸망 이전까지 [[야기에우워 왕조|야기에우워 가문]][* [[페르디난트 1세]]와 7촌 관계였던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언너]]의 결혼이 이에 해당한다. 비교적 먼 친척 관계였기에 4남 11녀라는 많은 자녀가 태어났고,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성했다.], [[비텔스바흐 가문]][* 페르디난트 2세의 아버지 카를 2세 대공과 3촌 관계였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의 결혼, [[페르디난트 2세]]와 5촌 관계였던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의 결혼이 이에 해당한다.] 등 외부 혈통과 성공적으로 통혼하면서 비교적 중화된 반면, 압스부르고 왕가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이전 왕조인 트라스타마라 왕조부터 누적된 근친혼에다가 카스티야, 아라곤과 통혼이 잦았던 포르투갈과의 정략 결혼, 그리고 외부 혈통이었던 프랑스 출신의 왕비들이 모두 후계자를 낳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후계자를 낳았음에도 후계자가 요절하는 불운까지 더해져 근친혼으로 파멸했다. 아울러 수십년간 반복된 근친혼의 폐해 때문인지 뒤로 갈수록 [[펠리페 3세|무능한 왕]][* 최근들어 [[펠리페 2세]]와 [[펠리페 4세]]는 재평가를 받은 반면 펠리페 3세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이 출현했으며 결국 [[카를로스 2세]]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2세기 만에 단절되었다.[* 한편, 이 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었던 [[레오폴트 1세]]는 비교적 먼 6촌 친척인 [[비텔스바흐 가문|팔츠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레 마그달레네]]와 결혼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를 이었다.] 스페인 압스부르고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카를로스 2세의 유언대로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부르봉 가문]]이 계승할 것인지 아니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계승할 것인지를 놓고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을 통해 동맹을 다져서 전쟁을 피하는 방식으로 영지를 확장시키고 가문을 번영시켰다. 이런 혼인관계 때문에 합스부르크의 핏줄이 오만 곳으로 퍼졌는데[* 다만 가톨릭을 믿는 국가들의 왕족들하고만 결혼했다. 당시 스페인 왕실은 극단적으로 가톨릭을 광신하는 국가였다. 영국이 가톨릭이 국교였던 시절에는 영국과도 혼맥을 맺었었다. ] 이게 '''오히려 [[근친상간]]으로 인한 왕실의 멸망을 부추기는 결과가 됐다.'''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등의 콩가루 관계가 계속 잇따르면서 유전적 결함이 중첩되어 유전병을 가진 후손들이 대거 태어났고, 외모적 특성인 합스부르크의 [[주걱턱]]이 가중되었다. 거기다 왕족들이 타국 왕족들이나 당대 평민들보다 더 요절하는 빈도가 늘어나니까 손자뻘 늦둥이 아들을 겨우 낳아서 대를 겨우 잇는 일이 빈번해졌다. [[카를 5세]]랑 [[카를로스 2세]]는 '''고조부와 현손''' 관계인데, 펠리페 2세와 펠리페 4세가 손자뻘 늦둥이 아들을 겨우 낳아서[* 펠리페 2세는 만 50세, 펠리페 4세는 만 56세에 후계자를 얻었다. 2023년 현재도 그 정도면 손자뻘로 취급받는데 16~17세기 당시에는 왕가의 초혼 연령이 18세 전후임을 감안하면 심하게 보면 증손자뻘이었다.] 이 둘은 자그마치 '''161년''' 차이로, 다른 나라 왕가 같았으면 '''7~8대손'''차이가 날 수 있는 나이차였다.[* 161년 차이가 4세대 차이라고 하면 평균 득손 시기가 40.25세로 2023년 현재 기준으로도 늦은 편에 속하며, (영아 사망률 보정 상태로도) 평균 혼인 연령이 19세 전후에 평균 수명이 50대 초반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거의 40년 차이는 거의 손자뻘이다. 펠리페 2세와 펠리페 4세가 숙질혼을 한 것을 감안하면 6세대 차이라고 해도 평균 득손 시기가 26.7세 정도로 당시 평균 혼인/초산 시기가 20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늦은 편이다.][* 득손 당시 부친의 연령 역시 의외로 유전병에서 중요 요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생식 퇴화가 늦게 온다지만 40대 중반을 넘어가면 마찬가지로 정자의 활동성 저하, 염색체 비분리, 유전자 발현이나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자손의 유전병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도 빅토리아 여왕 이전에는 가족력이 없었으나 그녀의 부친이 만 50대가 넘어서 그녀를 출산했기에 빅토리아 여왕에게 돌연변이가 생겼다. 하물며 유전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확립이 되었던 19세기였고 근친혼이 6~8촌 정도에서 이뤄져 그나마 덜했던 하노버 왕가도 이 정도인데 그것보다 근친혼이 훨씬 심했던 15~17세기의 합스부르크는 오죽했겠는가?] 벨라스케스의 걸작인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라는 그림의 모델로 유명한 스페인의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딸. 어머니는 아버지 펠리페 4세의 조카(!)뻘 되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 하지만 마르가리타 역시 사촌(레오폴트 1세의 어머니가 마르가리타의 고모) 겸 육촌(아버지 펠리페 4세와 레오폴트 1세의 아버지 [[페르디난트 3세]]는 고종사촌)이자 외삼촌뻘(어머니 마리아 안나의 남동생)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에게 시집갔다. 결국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불과 22세의 나이에 출산 도중 요절했으며, 그녀의 자식들도 대부분 10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마르가리타의 살아남은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는 [[바이에른 선제후국|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과 결혼했지만, 남편과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고 한다(...).]의 연작 초상화를 봐도 성장할 수록 도드라지는 주걱턱 때문에 항상 고개를 살짝 돌려서 최대한 주걱턱이 드러나지 않게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주걱턱을 가졌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근친상간]]을 반복하면서, 후손들에게 더욱 심한 주걱턱과 유전병을 물려주게 된 것이다. 압스부르고 왕조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에 이르면 유전자 결함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상당히 심약한 것은 물론이고, 주걱턱이 거의 질병 수준이라 음식을 제대로 씹어 삼키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발음할 수 없을 정도로 중증이 되었다. 게다가 카를로스 2세는 생김새도 흉측했을 뿐만 아니라 자식을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치와 향락에만 빠져 산 선대 국왕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다.]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의 대는 카를로스 2세에서 끊기게 된다. 근친혼의 극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여러 가지 의미로) 낳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